전설적인 애플의 공동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우리를 떠난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가 기술 세계와 그 너머에 미친 영향은 여전히 깊이 남아 있다.
그의 사망 기념일인 10월 5일에, 컴퓨터 사용 방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까지 변화시킨 이 기술 비전가의 여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초기 시절: 천재의 불꽃
잡스의 이야기는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후 폴(Paul)과 클라라 잡스(Clara Jobs)에게 입양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전자 기기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가족의 차고에서 기기를 만지작거리며 놀았다.
10대가 되면서 잡스의 반항적인 정신과 지식에 대한 갈망은 그를 리드 대학(Reed College)에 입학하게 했다. 하지만 한 학기 만에 중퇴하고, 관심 있는 수업을 계속해서 청강했다.
그 중 하나가 서예 수업이었는데, 이 미래의 기술 거물에게는 다소 이상한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잡스는 이 수업이 애플의 혁신적인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 접근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나중에 인정했다.
참고: 애플 공동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비틀즈에게서 영감을 받아 훌륭한 팀을 구성
오늘날 가장 가치 있는 회사의 시작은 미약
애플의 겸손한 시작은 실리콘 밸리의 전설이 되었다.
1976년, 잡스와 그의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은 애플 컴퓨터 컴퍼니(Apple Computer Company)를 설립했다. 그들의 첫 번째 제품인 애플 I는 취미로 컴퓨터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본 회로 기판이었다.
하지만 1977년에 출시된 애플 II가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애플 II는 단순한 컴퓨터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였다.
오늘날 애플의 시가총액은 3.448조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이다.
매킨토시 혁명
1984년으로 빨리 넘어가면, 애플은 매킨토시(Macintosh)로 다시 세상을 변화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를 갖춘 최초의 상업적으로 성공한 컴퓨터였다.
아이콘과 창이 있는 컴퓨터를 사용해본 적이 있다면(사실 요즘은 거의 모든 컴퓨터가 그렇다),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주류로 끌어올린 것에 대해 잡스와 그의 팀에게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항상 순조로운 항해는 아니었다
1985년, 당시 CEO인 존 스컬리(John Sculley)와의 권력 투쟁 끝에 잡스는 자신이 공동 창립한 애플을 떠났다. 이는 큰 타격이었지만, 잡스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그는 고급 교육 시장을 겨냥한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넥스트(NeXT)를 설립했다. 넥스트는 잡스가 기대했던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애플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애니메이션 파워하우스로
잡스가 애플에서 떠나 있는 동안 그는 루카스필름(Lucasfilm)의 작은 컴퓨터 그래픽스 부서를 인수했다. 이 부서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스(Pixar Animation Studios)가 된다.
잡스의 지도 아래, 픽사는 기술 회사에서 애니메이션 파워하우스로 변모하며, “토이 스토리”와 같은 혁신적인 영화를 출시하고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의 판도를 영원히 바꾸었다.
…그리고 돌아온 탕자
90년대 중반, 애플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개인 컴퓨팅의 최전선에 있었던 이 회사가 혼란스러운 제품 라인과 판매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운명의 장난으로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하여 잡스를 조언자로 다시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잡스는 빠르게 임시 CEO(“iCEO”라고 농담하며 부르기도 했다)가 되었고 이 회사를 재건하기 위해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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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르네상스
잡스의 애플 복귀는 비즈니스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복귀 중 하나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제품 라인을 간소화하고 단순성과 디자인에 집중했다.
그 결과는? 전체 산업을 재정의한 상징적인 제품들의 연속:
- 아이맥(iMac) (1998): 기술을 재미있고 접근 가능하게 만든 다채로운 올인원 컴퓨터.
- 아이팟(iPod) (2001): 첫 번째 MP3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디지털 음악을 주류로 만든 제품.
- 아이폰(iPhone) (2007): 인터넷, 음악 플레이어,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은 기기로,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꿨다.
- 아이패드(iPad) (2010):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이의 간극을 메우며 새로운 장치 범주를 창출했다.
잡스 철학
잡스를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한 것은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능력뿐만 아니라 몇 가지 원칙에 대한 변함없는 헌신이었다:
단순성: 잡스는 기술이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고 믿었다.
디자인: 그는 미니멀리즘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사용자에게 보이지 않는 부품조차 잘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의 원활한 통합을 추진하여, 작동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는 “묘지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매일 밤 우리가 애플에서 뭔가 멋진 일을 해냈다고 말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이 나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장
2003년, 잡스는 희귀한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애플을 계속 이끌며 회사의 가장 혁신적인 몇 년을 감독했다.
하지만 그의 건강 문제는 결국 2011년 8월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2011년 10월 5일, 그는 세상을 떠났고, 여러 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유산을 남겼다 – 컴퓨팅, 음악, 영화, 통신 그리고 소매.
그의 유산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애플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고 영향력 있는 회사 중 하나이다. 애플은 팀 쿡의 리더십 아래 진화했지만, 잡스의 많은 핵심 원칙들은 여전히 회사를 안내하고 있다.
잡스의 영향력은 애플을 넘어 확장된다. 기술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보는 그의 비전은 전체 기술 산업을 형성했다. 우리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스마트폰에서부터 미디어 소비 방식까지, 잡스의 흔적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분명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세상은 그 덕분에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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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책 조항: 이 콘텐츠는 일부가 Benzinga Neuro 의 도움으로 제작되었으며, Benzinga 편집자에 의해 검토되고 게시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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